부랴트인의 종교
부랴트는 시베리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쪽 모두 바이칼을 끼고 있다. 부랴트 문화는 고대로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민족들의 양식과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최근 3세기에 걸쳐서는 이곳은 샤머니즘, 티베트 불교, 러시아 정교회가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샤머니즘
부랴트인의 전통적인 종교는 샤머니즘이다. 부랴트의 샤머니즘은 순전한 감정적인 것을 표현하는 여러 의식과 행위가 많으며 이런 행위들이 믿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샤만교의 주문은 여러 가지 의식을 조화시킨 것이다. 즉 이 의식에는 말, 음악, 노래, 그림(안곤), 향, 술, 빛, 불등이 이용된다. 그 중에 샤만이 사용하는 말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노래, 기도문을 읽는 것, 레치타티보(서창), 부벤을 두드리는 것, 열 개의 철로 된 브렌차니에, 옷에단 뼈로 만든 배병, 춤, 최면술이 군중에게 영향을 끼친다. 부랴트 샤머니스트들이 바치는 제사 물은 여러 종류가 있다.
- 맥주나 보드카를 따르고, 흩뿌리는 것
- 음식, 돈, 담배를 바치는 것
- 여러 색깔의 헝겊 조각을 의식을 할 때 쓰는 도구, 안곤(나무, 철 등에 사람이나 동물의 모양을 한 것으로 영이 깃들게 하기 위한 것), 신성한 장소, 물이 나오는 곳에 매다는 것.
- 불을 피우는 것 - 향을 피우는 것
- 산짐승을 바치는 것 - 짐승을 잡은 후 바치는 것.
샤머니즘이 다른 종교와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별히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공공적인 장소나 모이는 장소는 자연 그대로로 산의 정상이나 산기슭, 강가, 시냇가, 평범하지 않은 나무, 바위 등이다. 제사 지내는 곳은 계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보통 신성시 되는 장소로 여겨지는 곳은 유목민의 천막 부락이나 종족의 발생지들이다. 각 장소에는 그 지역의 주인인 에쥐나 영이 있다고 말한다.
남녀 샤만은 샤머니스드과 자연의 세계를 초월하는 힘을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샤만은 하늘과 신에 의한 선택된 사람으로 여긴다. 그래서 샤만이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배경이 있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샤만의 혈통이거나 그 뿌리가 샤만과 관련이 있어야 된다.
일상생활의 외형에서 샤만들이 일반인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머리 뒤로 길게 땋아 늘인 머리, 막대기나 철로 된 지팡이, 리본이 있는 모자 등이다. 하늘에는 하얀(선), 검은(악)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이 중에 하얀 신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 샤만들은 흰 담비 털로 만든 옷을 입으며 하얀 말을 타고 다닌다.
샤만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예배를 섬기는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추가로 함축된 의미는 점의 달인, 예언, 마술사, 시인, 배우, 계보, 의식, 전통의 전문가, 구술 민족의식을 만들고 행하는 전문가, 일반 규율의 감독자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샤만 의식은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행해지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
부랴트에서 정교회 역사는 250년이 넘는다. 처음 이곳에 정교회를 세운 사람은 니로 이사코비츠이다
1682년에 뜨로이쯔 교회가 세워졌으며 다음으로 이곳에서 적극적 정교회 보급을 위해 선교임무를 띈 대사원이 세워졌다. 1727년에 이르쿠츠크에 주교가 임명되었으며 그는 부랴트, 야크트와 에벤크인들을 전도할 사명을 가졌다. 19세기 중반에는 이런 선교 활동이 더욱 활발하였으며, 이 때 성경을 비롯하여 20여권 이상의 정교회 관련 책자를 번역하였다.
20세기 초에 부랴트 정교회 신자는 85,000 명으로 그 당시 부랴트 인구의 1/3을 차지하였었다.
불교
러시아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전에 자바이칼 지역에는 이미 불교 신상과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18세기 초에 이런 비슷한 곳이 11개 있었으며 라마승들도 150명이 있었다. 수가 증가함에 따라 부랴트의 젊은이들은 불교의 중심지인 몽고나 티베트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1741년 여제 엘리자벳 뻬뜨로브나에 의해 라마교가 불교의 한 부류로서 러시아의 정식 종교로 채택되었으며 세금과 의무에서 제외된 150명의 라마승들이 생겨났다. 엘리자벳의 개혁후로 라마교의 권위가 많이 상승 되었으며 이와 함께 부랴트의 첫 사원 "땀친스크"가 세워졌다.
19세기 하반기부터 20세기 초에 부랴트의 라마교가 번성하였으며 이 때 사원에서는 학교, 의료시설, 인쇄시설, 다양한 예술, 불교학, 학문, 번역 출판일, 소설등과 관련된 일이 행해졌다.
부랴트에 퍼진 라마교는 3대 불교의 흐름 중에 하나이며 의식이 복잡하다. 의식 중에 가장 극장 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예배 중에 행하는 춤(짬,후랄)이다. 짬은 티베트 어로 참이며 춤이라는 뜻이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무언극과 춤은 불교의 신비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티베트에서 연유하였다. 부랴트에서 짬은 수호신이라는 의미로 자주 받아들여지며, 이는 성난 육체로부터 불교의 믿음을 보호해 주는 자로의 의미가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다짠에는 티베트 어로 거룩한 춤 의식을 안내하는 특별 안내서가 있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거룩한 라마승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예배 때의 모든 춤 의식, 무언극을 안내하고 만들기도 하였다. 큰 절에는 보통 화가들이 있어서 신들, 사람, 동물, 새들의 가면을 만들어 짬(춤)을 행할 때 사용되었다. 또한 옷을 만드는 전문가가 있어 여러 모양의 난해한 등장인물의 옷을 제작하였다. 장엄한 예배 짬(춤)-후랄 다크싀트는 1년에 한번 7월 초에 행하는데 이 때 많은 신자들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1914년 부랴트에 라마승은 16,000명, 48개의 사원이 있었으며 라마교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이로 인하여 문서의 보급, 학문의 발달, 문학, 예술, 건축, 공예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한다. 불교는 생활의 모형, 민족 정서, 예절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1925년 이후 소련에서 종교와의 충돌을 시작한 이후 종교 활동은 계속해서 줄어들었으며, 모든 사원들은 문을 닫고 물건들은 징집되었다. 이런 와중에 수천 개의 문화재들이 파괴되었으며 결국 30년대 후반에는 불교 사원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이후에 불교 사원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1946년에 공식적으로 "이발민스크 다짠"이 세워졌다. 부랴트에서 실제적인 불교의 재건은 80년대 하반기에 시작되었다. 이때 옛 사원의 재건, 새 사원 설립, 전문가 양성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다. 1995년에는 16개의 사원이 활동하였다.
자료제공 - CD "바이칼 백과사전". (v.1.1, 2003) 바이칼비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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